아르마딜로(Armadillo)
단신 2012/05/03 00:07(이건 일단 영화 리뷰는 아닙니다, 누설이 있습니다.)
아르마딜로는 덴마크와 영국이 함께 주둔하고 있다는 아프간의 전진 기지 이름이다. 이 영화는 (자세한 내용은 영화 관련 블로그를 보시고) 덴마크군 당국에서 지원을 받아 촬영한 실제 영상이라는데, 해당 부대에 처음 파견되어 배치된 병사들의 출국부터 시작하여 돌아오는 날까지를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그 주둔 중에 발생한 교전에서 있던 어떤 사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 영화를 보게 끌어당긴 것은 영화의 소개 문장이었다. “전쟁이 당신의 피부에 스며들 정도로 중독된다”라며 병사들이 전쟁 속에 점차 익숙해지고 중독되어 가는 과정을 볼 수 있다는. 나는 이것이 마치 강렬한 자극을 경험하고 그것을 반복 경험하려는 그런 과정이 아닐까 생각했고, 이게 어쩌면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경험하는 것과 유사하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호기심이 생겼다.
영화는 병사들이 첫 전투를 겪고 나서 전투 상황에 능숙해져 가고, 동료의 죽음과 부상을 목도하면서 소위 월남전에 참전했던 어른들이 말하는 ‘눈이 뒤집어지는’ 상황에서 탈레반 병사들을 참살하고, 시체에 난사를 하며 낄낄대고, 작전 후 디브리핑에서 희희덕대는 장면들을 그대로 노출하며 이들을 고발한다.
잔인함. 불쾌한 기분과 찝찝한 느낌을 떨칠 수 없는. 미군이 이라크에서 포로들을 학대했던 것들을 여기서 또 어떻게 재현되는가를 적나라하게 볼 수 있는.
(여기서 어떤 분들은 '우리가 왜 전쟁을 해야하는가'라거나 '파병 반대론'이라던가로 확장하시겠지만, 저는 일단 게이머고 게임 개발자라...)
다시 게임으로 돌아와서, 우리는 전쟁을 어떻게 묘사해야 하는가 생각이 들었다. 덴마크 병사들이 무료한 파견 초반에 FPS 게임을 하며 낄낄대던 모습이 영화의 후반과 어떻게 묘하게 배치되는지를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않는다. 우리가 묘사하는 아름다운 흥미로운 전쟁이, 그렇게 전쟁을 겪은 청년들이 실제 전장에서 어떻게 변해가는가 하는 생각도.
이 영화, 아니 다큐멘터리는 일단 지금까지 ‘리얼한 상황인듯 연출한’ <라이언 일병 구하기>나 <밴드 오브 브라더스> 같은 영화(드라마)들처럼 작위적으로 카메라를 흔들어대지 않는다. 평시 상황에서는 침착한 앵글을 유지하고 있지만, 전투 상황에서는 예의 영화들보다 오히려 더 심하게, 촬영자가 실제 총알이 쏟아지는 한 가운데에서 카메라를 던지고 엎어지는 상황이나 전투 중에 탈레반 진영을 ‘두려움에 떨며’ 촬영하는 상황, 병사들의 철모에 붙여 놓은 카메라 상황 따위를 보여주면서 드라마틱한 전장이 아니라 실제 전장의 상황은 어떤가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그런 면에서, 상상 속의 드라마틱한 전장에 익숙한 게이머라던가 밀덕에게 한 번쯤 볼만한 영화가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오늘(2012년 5월 2일), 밝은해님께서 링크해 주신 “Dumbness In Games, Or, The Animal As A System”의 이야기가 새삼 와 닿는 영화였다.
"이 부조화는 이전의 메커닉 vs 서사 논쟁으로도 지적된 바 있다. <디어 에스더(Dear Esther)>나 <저니(Journey)> 같은 게임은 아예 전투를 배제해버린다. 우리 게임 업계는 지금까지 전투 말고는 구조적으로 복잡하게 발전시켜 놓은 게 없지만, 적어도 그걸 없애는 방법 만은 알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