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라는 게임을 하고 있으면 이상하게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B라는 게임을 꺼내들고 플레이를 하게 만든다. 하지만 역시나 B라는 게임을 좀 하고 있으면 A도 B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 C라는 게임을 또 꺼낸다. 이러다 보면 결국에는 A도 B도 C도 만족스럽지 않아서 '책이나 읽자'는 결론이 된다.

예를 들면, 대항해시대는 군인으로 플레이할 때 정말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한 번 한 번의 전투가 재미있기 보다는 군인 레벨을 올리기 위한 경험치 수단이고, 오히려 크리티컬 데미지를 맞아 배의 최대 내구도가 깎이기라도 하면 오히려 짜증이 된다. 말하자면 군인 레벨을 올리는 '고행'을 하고 있는 거다.

게다가 해적질을 한다고 생각해도, 상대 함선에 전투를 거는 것도 쉽지 않고 (전장도 너무 좁아서) 도망가는 배를 따라가기도 쉽지 않다. 게다가 백병전으로 상대 배를 제압했다고 하더라도 배를 뺏는 것은 절대 불가능. 그저 가진 화물이나 내놓으라고 협박해서 푼돈이나 좀 벌고 끝이다.

뿐만 아니라 이놈의 함포는 좌현과 우현의 쿨타임이 동시에 돌아서, 좌현으로 공격을 하고 나면 우현의 적에게는 공격을 할 수가 없다. 포탄의 종류도 포도탄, 화염탄 등등으로 특수 탄종이 있지만 그 효과가 미미해서 '그냥 관통(데미지) 높은 통상탄을 쓰세요'라는 걸로 귀결. 대항해시대의 전투는 그냥 구색맞춤인거다.

그래서 불타는 바다의 해적을 꺼내들게 된다. 해전을 리얼하게 표현하고 있고 탄종도 분리되어 효과가 뚜렷하며 상대 배를 접현해서 싸우면 그 배를 뺏을 수도 있다. 전투력만 충분하다면 통통배로 전함을 뺏어타는 희열도 누릴 수가 있다. 물론 성공 확률이 높지는 않지만.

하지만 불타는 바다의 해적은 경제와 무역이 제대로 구현되어 있지 않다. 마을에서 퀘스트나 받아서 전투만 죽어라고 하는 것이고 간간히 PVP라도 붙으면 예의 전투가 기가막히게 아드레날린을 뿜어내지만 리스크가 너무 커서 후덜덜.

항해세기가 그나마 전투와 무역, 생산에 적절하게 밸런스를 잡았던 게임이지만 서비스 종료. 항해세기는 세부에는 훌륭했지만 결정적으로 항해가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배를 탄다는 느낌이 부족한데 비슷한 시기에 나온 대항해시대의 네임 밸류에 밀려 흥행 실패. 하지만 꼭 그렇다고 하기에도 북미 진출에도 실패한 것을 보면 다른 문제가 있던 것 같다.

이외에도 캐러비안의 해적 영화 라이센스를 한 디즈니의 해적 게임도 있지만, 이건 항해 게임이라기 보다는 해적이 모험하는 RPG 게임이라 항해 게임 분류로 넣어주기도 애매하고...

결국 대항해시대로 돌아와 생산이나 하자고 기술을 올리다보니 하염 없는 반복. '슬슬 벽이 느껴져요'라고 하소연했더니 길드의 마스터 주조공께서 한 마디 "원래 그래요. 참고 하세요".

게임이 게임 플레이로 시간을 보람차게 보낸다는 느낌이 아니라 고행과 득도를 향한 길처럼 느껴지는데, 내가 이렇게 대항해시대를 계속 하다간 부처가 되겠다 싶다.

도대체 게임을 하면서 "만렙이 되면 보답이 있을 겁니다"라고 말하는 놈들은 뭘까. 이미 부처인걸까, 피학적 재미를 느끼고 있는 걸까. 아니면 나도 그 과정을 참고 보냈으니 너도 그 젠장맞을 고생길 한 번 겪어봐라는 못된 생각일까.

저 과정들을 참고 만렙이 된 플레이어들을 존경해야 하는 걸까, 우직하다고 칭찬해줘야 하는 걸까. 개발사에서는 뭔가 답례로라도 인사치레를 해줘야 하는 건 아닐까? 이렇게 병신 같이 만들었음에도 잘 참고 만렙이 되었으니 표창장을 수여함, 땅땅땅. 이런 거.

  • 얼떨결에 길드 마스터가 되어 접을 수가 없어요...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