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과 '갈다'
분류없음 2009/03/10 17:34최근 인터넷 공간에서 게임 관련으로 가장 많이 쓰는 단어 중의 하나는 아마도 '관광'인 것 같다. 블로그를 '갈아' 엎기 전에 관광의 어원에 대해서 썼던바가 있는데, 오늘 문득 '갈다'의 새로운 활용을 보고 검색하다가 이런 글을 발견했다.
이 글로 저분께 해명이 될까 모르겠다만, 관광의 어원은 여러가지 설이 있다는 걸 먼저 이야기 해야겠다. 첫째로 '문화 관광 단지' 어쩌구 하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연설에서 출발했다는 설이 있다. 특유의 경상도 사투리로 '강간(관광) 단지'라고 발음을 한 이후에 유래했다는 설.
둘째로는 '굴욕적으로 농락하다'는 뜻으로 실제 강간의 의미를 표현 순화해서 관광이 되었다는 설이다. 일부에서는 스타크래프트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명확하지 않다. 스타크래프트가 국내에서 유행한 시기와 '관광'의 등장 시기는 대략 비슷하지만, 외국의 온라인 게임 혹은 멀티플레이에서도 "강간당했다(got raped)" 같은 표현들이 "좆됐다(fucked up)" 같은 fuck의 다양한 활용 표현들에서 더 과장된 의미로 사용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관광이 후에 '개념을 안드로메다로 보냈다'는 관용어구와 만나서 '안드로메다로 관광 보냈다'는 형태로 변형되었다는 것이다. 어원 유래의 전자나 후자나 강간에서 출발했지만, 현대에 각종 욕들의 어원을 이해하고 쓰는 사람이 거의 없이 관용적으로 사용하는 것처럼, 관광은 그렇게 진짜 관광으로 받아들여졌고 이젠 '농락하다'의 대체 단어가 된 것이다.
이런 식으로 변형된 단어에는 '갈다'도 있다. 원래 구어에서 '갈아버리겠다'는 욕으로 사용되기도 했고, 사전적 의미로는 멧돌로 잘게 부수다, 교체하다 같은 뜻 등이 있지만, 최근의 활용에서는 '(아이템, 상대의 유닛 등을) 없애다'는 정도로 사용된다.
'갈다'는 2007년 유행하던 오게임이라는 우주 배경의 웹 게임에서 우주선들이 전투를 하고 나면 우주 공간에 파괴된 잔해(데브리, debris)가 전투 후에 우주 공간을 떠있는 되는데에서 유래했다. 마치 믹서나 멧돌로 상대편의 우주선을 '갈아버린' 듯 잔해가 남은 거다. 요즘은 상대편의 우주선을 '갈아버렸다'고 표현하고, 관광과 마찬가지로 '굴욕적으로 물리치다' 정도의 뜻이나 '망실했다'는 정도로 현재 활용한다.
이런 단어들은 인터넷이나 게임에서 만들어진 다양한 다른 단어들, 듣보잡, 크리, 고정닉 같은 단어들과 함께 인터넷 문화가 현실에 깊이 들어왔다는 척도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이런 단어들은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고 다양한 활용이 사전적 원래의 뜻과 달라 네이버 지식인 등에서 뜻을 묻는 글들도 상당하게 올라온다.
게임인으로서 이게 긍정적이다 부정적이다 입장을 정하기에도 묘하지만, 현상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학생들 중 누가 '관광'을 강간이라는 뜻이라고 사용하고 있겠는가. 그들은 이미 관광과 강간을 분리해서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봐도 옳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관광 열차와 '관광 당했다'를 혼동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