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적으로 훌륭한 게임이 왜 흥행에는 실패할까. 이 고민은 내가 게임 업계에 있으면서 꾸준히 했던 것이기도 하고, 각종 커뮤니티에서도 계속되던 질문과 토론이기도 하다. 이 게임은 잘 만들었는데 왜 실패했을까.

생각해보면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첫째로는 게임을 흥행하는데는 제품 자체의 능력(소위 게임성이라고 한다)도 있겠지만, 출시된 시기나 시장의 토양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경쟁 게임이 없는 시장에서 출시되는 경우나 비슷한 유형의 게임이 없는 시기도 중요하고, 충분히 볼륨이 커진 시장이라면 어지간히 잘 만든 게임이라면 성공을 할 수 있기도 하다.

즉 게임의 흥행에는 여러 복합 요소가 작용을 한다는 뜻이고, 잘 만든 게임만 가지고는 상황에 따라 흥행성을 보장할 수 없기도 하다는 거다. 예를 들어 지금 같은 시기에 아무리 잘 만든 2D 슈터가 나온다고 하더라도 시장에서 흥행을 보장할 수는 없는 토양이라는 뜻이다.

잘 만든 게임이란 뭔가. 기획적으로 컨셉이 의도하는 것을 게임 요소들이 잘 떠받쳐 주고 있다는 뜻이다. 이 요소와 컨셉의 관계는 장르와 요소의 관계일 수도 있고, 플랫폼과 인터페이스의 관계일 수도 있으며, 어쨋든 이런 것들이 잘 버무려져서 종합되어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어낸다는 거다.

재미, 사실 이 말은 객관화할 수 없는 개인적인 경험이기 때문에 기획에서 처리할 수 없다. 기획서를 보고 우린 게임의 요소들을 보며 자기 기존 경험들로 비추어 재미있을 것이라고 추정할 뿐, 실제로 구현된 상태에서 재미가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만약 가능했다면 40년 역사 동안 전세계에 등장한 게임들은 거의 모두 재미있었을 것이다. 다른 미디어, 영화 같은 것은 어떤가. 시놉시스만 보고 재미있다고 판단했고 투자했던 그 많은 영화들은 왜 실패하는가도 비슷한 과정이라고 본다.

그래서 기획 그 자체로 흥행성을 담보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다수의 사람들이 이 게임을 재미있다고 느낄지 아닐지 기획 그 자체로 판단할 수 없고, 그렇다고 그래픽이나 프로그램의 완성도로 판단할 수도 없다. 완성되어가는 과정 중에 테스트를 해보면서 광내기(polish)과정을 통해 '좀 더 재미있게' 만들 수는 있어도.

흥행성이란 말은 그래서 기획적으로 훌륭하다와는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다. 반대의 경우 마찬가지로 흥행한 게임이 기획적으로 훌륭하다 할 수 없다. 한 예를 생각해보면, 초기의 리니지는 기획적으로 훌륭한 게임은 아니었다. D&D의 룰을 카피하면서 발생한 밸런스 붕괴 - 특히 캐릭터의 랜덤 스탯 등에서 기인하는 - 나 캐릭터 본체의 능력과 아이템들의 능력 인플레이션 등에서 보면 특히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니지의 성공은 게임 외적인 부분에서 플레이어들의 경쟁 몰입과 환금성 등의 영향이 있었고 국내 최대의 MMORPG가 됐다.

그래서 난 '기획만 보고도 성공할지 알 수 있다'는 호언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개발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 많은 변수들을 무시하고 있을 뿐더러 초기의 컨셉을 게임으로 구현하면서 추가/삭제/변경될 게임 요소들에 대해서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게임이 흥행한다거나 흥행한 게임이 좋은 게임이라거나, 그건 모든 것이 결판난 이후에 분석할 때나 가능한 말이다. 그리고 '게임은 좋은데 흥행에 실패했다'는 말이 간혹은 일리있는 말이기도 하고. (대체로는 지가 좋아하는 게임을 그렇게 말하는 것이라 동의할 수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