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산업 차원에서 인디 게임의 중요성
컬럼 2007/11/14 05:53한국의 게임 산업은 이제 20년의 역사를 가진 꽤 안정된 상태로 들어서고 있다. 수백 개 - 2004년엔가 본 게임백서의 집계에는 약 400개의 게임 회사가 있는 걸로 기억한다 - 의 회사가 있고 수만 명의 게임 개발자가 이 업계에 종사하고 있으며, 시장 규모는 수천 억 단위가 되었으니까, 이것을 '안정적인' 상태라고 부르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물론, 사업주들은 지금도 '더 많은 돈'을 바라고 있겠지만.
그런데 산업의 입장이 아니라 게임의 입장에서 보자면, 한국 게임 산업이 과연 성장했는가에 대한 고민을 다시 한 번 해볼 필요가 있다. 대표적으로, 한국의 주력 업종인 MMO 게임들을 보자. 지난 2000년 MMORPG 붐 시대에 나왔던 MMORPG들과 지금의 것들을 비교해서 나아진 것, 발전한 것은 뭐가 있는가.
그래픽? 보기에 그럴듯한 모습이야 훨씬 나아졌다고 하지만 이것은 그래픽의 밑바닥을 받쳐주는 하드웨어의 성장이 급속으로 되었으므로, 거기에 따라 함께 좋아졌다고 봐야지 않을까. 게다가 새로운 프로그램 기술로 3D 표현은 매우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일반적인 MMO 게임에서 활용하고 있는 것들은 매우 제한적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우리의 사업주들이 바라는 '매스 마켓' 공략을 위해서는 저사양화가 필수적이고, 그에 따라 새로운 기술 적용은 극히 부분적으로만 되고 있다. 최근 서비스를 시작한 아바(AVA, 네오위즈)는 이런 새로운 기술 적용을 위해서 과감히 시장 일부를 포기했지만.
좀 더 내면적인 부분을 보자면, 게임 디자인, 설계의 면을 이야기 해야겠다. 과연 무엇이 나아졌나. 확실히 상업화가 가능한 부분들은 좋아졌다. 다양한 아이템, 착용 파트, 상용화 하기 위한 기능성 장비들... 그리고 다양한 온라인 게임들의 등장. 음, RPG만 존재하던 시장에서 FPS, 슈팅, 스포츠 뿐만 아니라 이제 음악 게임까지 나왔으니까 PC 싱글 플레이 게임들이 가지고 있는 게임 형식을 온라인으로 적용했다는 면에서 발전한 걸까.
사실 한국의 온라인 게임 산업은 "더 온라인으로 만들 것이 남은 게 있나?"라는 관점으로 지난 7년을 보내왔다. RPG가 포화되자 액션 게임들이 등장했고, 이것도 포화되어버리니 FPS, 그리고는 스포츠, 그리고 이제 더 이상 만들 게 없다는 지경이 되니 2D 슈팅을 온라인으로 만들고, 콘솔 게임에서 흥행중인 음악 게임도 이제 온라인으로 해보자는 것이었을 뿐이다. 지금까지 등장했던 한국산 온라인 게임에 "와 이건 처음 보는 게임인데?"라고 감탄사를 날려줬던 게임이 어디 있던가 말이다. 그리고 여전히 이렇게 "더 온라인으로 만들 것 없나"라는 시작이 업계의 유명 개발자들 사이에도 만연해 있기도 하고.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한국 게임 업계는 모두 미국과 일본의 게임들을 모방하는 걸로 성장해왔다, 이 말이다. 미국과 일본의 게임들이 새로운 게임성을 발굴해내고 그것을 상업화하는 과정들을 자체 시장에서 가지고 있고, 이것들이 상용 게임으로 정착하는 시행 착오의 과정들을 한국 온라인 게임들은 해본 적이 없다. 이미 만들어져있고 검증된 게임성을 카피해서 만들면 그만이니까. 연구개발? 그건 먹는 건가요?
그런데 미국이나 일본의 게임 시장을 보면 이들은 새로운 게임을 만드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아니 뭐 이런 걸 돈 받고 팔아!"라고 짜증을 낼만한 정제되지 않은 게임 형식을 출시하고, 시장에서 된서리를 맞은 이후에 비슷한 게임성을 발전시킨 새로운 게임이 등장한다. 이렇게 게임들이 이전에 상업화에 실패한 것들을 검토하고 개선해서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내는 것을 한국 구석에 앉아서도 볼 수가 있다는 말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FPS의 점령 룰이나 깃발 뺏기 같은 요소들은 MOD에서 먼저 만들어졌고 이후 상용 게임들로 흡수된 것들이다. 가장 최근에도 밸브(Valve)는 포탈(Portal)이라는 하프라이프의 새로운 프렌차이즈를 아마추어 게임 팀이 만든 것을 흡수해서 발매했다.
한국은 어떤가. 아마추어 게임 개발팀들이 새로운 형식을 시도하는가? 매년 졸업 작품으로 십여 개의 아마추어 게임들을 보고 있지만, 적어도 우리 학교에서 소재가 아닌 형식에서 "신선하다!"라고 할만한 것을 찾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이 졸업생들은 게임 업계의 취업을 위한 포트폴리오로 졸업 작품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고, 왜냐하면 이들은 최대한 현업에서 만들음직한 게임을 비슷하게 만들어야 좀 더 그럴듯한 포트폴리오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지 아이디어만 신선한 게임을 만들어서는 프로그래머와 그래픽 작업자(2D, 3D 아티스트)들이 취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에 여성으로만 만들어진 한 팀에서 '어이쿠 왕자님'이라는 프린세스메이커의 남성 버전을 만들었다. "아니 이게 무슨 동인녀 게임이야"라고 폄하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보아왔던 '만들어진 아마추어 게임' 중에서는 가장 신선했다. 하지만 이 역시 소재면에 한정될 뿐, 이것이 프린세스메이커의 아류라는 그 한계를 벗어나기는 어렵다. 물론 이 게임이 나쁘다는 말도 아니요, 후지다는 말도 아니다. 인디 게임은 어디까지나 '새로운 시도'를 해야한다는 면에서, 그것이 기존 형식에 새로운 소재를 입히는 것은 아직 출발 단계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거다.
인디 게임을 개발한다는 것은 자본의 영향에서 벗어남을 의미한다. 퍼블리셔나 시장에 먹힐만한 게임을 만들기 위해서 "이거 괜찮은데?"라고 생각했던 요소들을 "아무래도 좀 위험해"라며 잘라내는 과정 따위를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처음 컨셉에 "이런 게임을 만들어보자"라고 결정한 것을 끝까지 그대로 만들어내는, 다소 괴작 같기도 하고 이상하게 어긋나 있는 것 같기도한 그런 요소들이 뒤엉켜 "시도는 신선하다"라고 평을 받아도 상관 없다는 뜻이다.
자본화된 게임은 대규모화 되고, 대규모화 된 게임은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는다. 새로운 시도는 시장의 저항을 받게 되는게 당연하고, 팔려야 하는 숙명에 이런 저항은 위험하기 때문이다. 언제 EA가 새로운 형식의 혁신적인 게임을 만든 적이 있던가. 언제 블리자드가 기존의 형식을 뒤엎는 게임을 만든 적이 있는가. (이런 면에서 개인적으로 렐릭을 좋아한다.)
말하자면, 인디 게임은 상업 게임들의 하부를 지지하는 기반이라고 봐야 한다. 이런 자본화된 게임들이 시도하지 못하는 것들을 시도하고, 그 새로운 아이디어와 새로운 형식들을 테스트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환경이 인디 게임 개발이다. 그런데 문제는 앞에서 말했든, 한국의 인디 게임이 상업화된 게임들을 흉내내는데 그치고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하는게 아니라 현업, 실무에서 만들음직한 것들을 흉내내는 선에서 머물기 때문에, 이 인디 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람들이 현업의 게임과 같은 선상에 놓고 인디 게임을 평가하게 되고, 결국 "이게 뭐야 듣보잡 쿠소 게임이잖아"라고 치워버리는 결과를 만들어낸다.
모든 문화는 피라미드 형태로 만들어 지고, 그렇게 되어야 한다. 하부의 아마추어 개발에서 새로운 참신한 요소들을 발굴해내고 그것들을 자본화된 게임들이 흡수하고 발전시키는 형태로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한국 축구의 문제점을 이야기하고, 한국 영화 산업의 문제점을 이야기하고, 한국 만화 산업, 한국에 존재하는 전반적인 문화 산업들의 문제를 이야기할 때 항상 하는 그 '아마추어가 없다'는 틀에 박힌 이야기가 모두 이 맥락으로 이어진다.
"국산 게임은 참신한 게 없어"
왜 없는가. 왜 하지 못하는가. 지나치게 자본화되고 만들어진 것은 모두 팔려야한다는 마인드로 전체를 휘감고 있기 때문이다. "실패하면 망해버리는 작은 회사에서 그런 새로운 걸 만들 수가 있나요?" 없다. 하지만 이런 시도 조차 하는 벤처 기업이 없기 때문에, 벤처 기업이라고 차려놓고 1~2억 투자해서 대박이 될 꿈을 꾸기 때문에, 이 회사들은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다. 소자본, 2~30명이 개발한 게임으로 대자본, 100명 이상의 개발자들이 만든 게임과 맞짱뜨려는 그 용기 덕분에, 한국 시장에서 참신한 게임은 더 이상 나올 수가 없다.
그리고 이 상태라면 한국 게임 산업의 미래는 매우 불투명하다.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